VLEO라는 궤도의 무덤에서 살아남기: Albedo Clarity-1 포스트모텀 분석
엔지니어로서 ‘Postmortem(사후 분석)‘만큼 배울 게 많은 문서는 없습니다. 성공담은 생존 편향으로 가득 차 있지만, 실패와 수습 과정이 담긴 기록은 진짜 피와 땀이 섞인 노하우니까요.
최근 Albedo 라는 위성 스타트업이 그들의 첫 번째 VLEO(초저궤도) 위성인 ‘Clarity-1’의 포스트모텀을 공개했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우리 위성 쏘아 올렸어요’ 식의 PR이 아닙니다. 궤도에서 주요 부품이 고장 났는데, 그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뜯어고쳐서 미션을 완수하고 장렬히 전사한 ‘엔지니어링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Hacker News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던 이 이야기를, 시니어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보겠습니다.
1. VLEO: 왜 굳이 지옥으로 들어가는가?
대부분의 상업 위성은 500km 이상의 LEO(저궤도)에 머뭅니다. 그 아래인 VLEO(Very Low Earth Orbit, 약 250~350km) 는 위성에게는 ‘무덤’이나 다름없습니다.
- 대기 저항(Drag): 공기가 희박하게나마 존재해서 위성을 끊임없이 끌어당깁니다. 연료가 없으면 몇 주 만에 추락합니다.
- 원자 산소(Atomic Oxygen, AO): 태양 자외선에 의해 쪼개진 산소 원자가 위성 표면을 맹렬히 부식시킵니다.
그런데 왜 Albedo는 굳이 여기로 갔을까요? 바로 해상도(Resolution) 때문입니다. 렌즈 크기를 키우는 건 돈이 천문학적으로 들지만, 피사체(지구)에 가까이 가는 건 물리적으로 가장 확실한 해상도 향상 방법입니다. Clarity-1은 10cm급 해상도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는 수조 원짜리 정부 정찰 위성급 스펙입니다.
2. 하드웨어의 배신,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구원
Clarity-1 미션의 하이라이트는 ‘위기 대처’입니다. 발사 한 달 만에 자세 제어의 핵심인 CMG(Control Moment Gyroscope) 하나가 베어링 과열로 멈췄습니다. 4개 중 1개가 죽은 거죠. 3개로도 제어는 가능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다른 CMG들도 불안정한 징후를 보였습니다.
보통의 위성이라면 여기서 ‘미션 실패’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Torque Rod(자기장 토크 로드) 만으로 3축 제어를 해내는 미친 짓을 감행합니다.

엔지니어링 관전 포인트: Torque Rod 제어
원래 Torque Rod는 CMG나 리액션 휠의 모멘텀을 덤핑(해소)하는 보조 장치입니다. 힘이 매우 약하고 지구 자기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밀 제어용이 아닙니다. 마치 ‘핸들이 고장 나서 사이드브레이크와 엑셀 조절만으로 주차를 하는 격’ 입니다.
Hacker News 댓글에서 Albedo CTO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들은 일반적인 수렴 방식 대신 Lyapunov 기반의 제어 법칙 을 새로 짜서 궤도상에 업로드했습니다. 그 결과, Torque Rod만으로 VLEO 진입 기동을 해냈고, 결국 3-CMG 제어 로직을 완성할 시간을 벌어냈습니다. 이게 바로 소프트웨어 정의 하드웨어(Software Defined Hardware)의 진수입니다.
3. Tech Stack: 우주에서 FPGA를 굽다
이 팀의 소프트웨어 운용 능력은 솔직히 좀 무섭습니다. 보통 우주 업계는 보수적이라 검증된(오래된) 기술을 쓰는데, 이들은 꽤나 현대적인 스택을 썼습니다.
- OS: Linux with
PREEMPT_RT(리얼타임 패치) - Language: Modern C++
- OTA: 총 14번의 비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 FPGA Update: 궤도 상에서 FPGA 비트스트림 업데이트 성공
특히 FPGA 업데이트 는 정말 리스크가 큰 작업입니다. 잘못되면 위성은 영원히 벽돌(Brick)이 되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통신 채널의 하드웨어 결함을 우회하기 위해 FPGA 로직을 수정해서 쏘아 올렸고, 성공했습니다. “Safe Mode First” 철학으로 테스트 파이프라인을 구축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4. 결과물: 10cm의 벽을 두드리다
결국 그들은 찍어냈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보시죠. CMG 문제로 인해 완벽한 10cm 해상도(NIIRS 7 등급)까지는 아니었지만, 98% 수준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특히 열적외선(Thermal IR) 이미지는 정말 인상적입니다. 냉각기가 없는 저가형 마이크로볼로미터를 썼음에도, VLEO의 이점 덕분에 발전소 굴뚝과 코크스 오븐을 구분할 정도의 해상도를 보여줍니다.

5. 실패의 원인: Supply Chain의 함정
그렇다면 왜 CMG는 고장 났을까요? 원인은 허무하게도 윤활유(Lubricant) 였습니다. 공급사가 제공한 스펙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실제 우주 환경의 진공과 온도 변화라는 ‘Edge Case’에서 윤활유가 버티지 못한 겁니다.
HN 댓글에서 한 유저가 지적했듯, 이는 스타트업이 겪는 전형적인 ‘Supply Chain Depth’ 문제입니다. 대기업처럼 부품 하나하나를 뜯어서 가속 수명 테스트를 할 시간과 돈이 없으니, 공급사의 스펙 시트(Datasheet)를 믿어야 하는데 거기서 구멍이 난 거죠. Albedo 팀도 이를 쿨하게 인정하고, 다음 모델부터는 열 설계를 변경하여 해결했다고 합니다.
또한, 9개월 차에 위성과 연락이 두절된 원인은 서드파티 무선 통신 모듈의 메모리 커럽션(Memory Corruption)으로 추정됩니다. 이것도 결국 “중요한 건 다 인하우스(In-house)로 만들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6. Hacker News와 커뮤니티의 반응
재미있는 점은 HN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는 겁니다.
- 비판: 글의 톤이 너무 “Tech Bro”스럽다. “Nailed it”, “Locked in” 같은 표현이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 투자자 꼬드기기용 아니냐.
- 옹호: 톤 매너가 무슨 상관이냐. 기술적 성취가 진짜다. Torque Rod로 3축 제어를 해낸 건 마법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비판적인 의견에 일부 동의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투명성(Transparency) 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보통 실패한 미션은 조용히 묻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상세한 데이터와 함께 “우리가 어디서 삽질했는지”를 공개하는 건 업계 전체에 큰 자산이 됩니다.
Verdict: 성공적인 실패
Clarity-1은 결국 9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하지만 Albedo는 다음 세 가지를 확실히 증명했습니다.
- VLEO 생존 가능성: 모델링보다 12% 더 나은 항력 계수 확인.
- In-house Bus 검증: 직접 만든 위성 버스와 소프트웨어 스택이 (윤활유 빼고) 동작함.
- 운용 능력: 위기 상황에서 원격으로 펌웨어를 뜯어고쳐 살려내는 능력.
엔지니어링에서 ‘완벽한 첫 시도’란 유니콘 같은 겁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우아하게 실패하고, 무엇을 배웠는가’ 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포스트모텀은 근래 읽은 기술 블로그 중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참고 자료: